꽃놀이를 갔던 날의 일기를 더 자세히 적으려다 미루고, 미루고. 결국 2주가 넘게 흘렀다. 대부분의 일을 미루며 지냈다.
2주 중 1주일 정도는 방명록에도 적어놨듯 ㅇㅗ3 팬픽을 탐독했다. 마음에 드는 소설 몇 편은 작가의 허락을 구해 번역을 시도해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이틀 정도는 즐거웠으나...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실속 없는 상태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 이상은 즐거움을 위한 행동이 아닌 현실도피일 뿐이다. 내가 나로 움직여야 한다. 점심을 만든다. 1시간가량 청소를 한다. 침구를 세탁된 것으로 바꾼다. 샤워를 한다.
청소를 하고 일기를 적기 위해 P5의 Life Will Change를 재생했다. (괘타쿠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자극제가 있을까?)
월요일, 난생처음으로 입술에 수포가 돋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다. 다음날 확인해보니 수포가 가라앉지 않아 수영 강습을 걸렀다. 약국에서 연고를 사와 발랐다.
어제는 작업을 구상하다가 막혀 밤 산책을 나섰다. 마트로 향해 동죽과 두부를 사왔다. 웹서핑 도중 우연히 들어간 브런치에서 낯선 이의 이야기를 실컷 읽다가 늦게 잠들었다.
머리가 진공 상태에서 옴짝달싹 못 할 때, 망연히 있다가 우울해질 땐 타임트래커의 리포트를 확인한다. 공부와 작업을 할 때만 집중력을 돋우기 위해, 스트레칭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켜둔다. 어느 것도 하지 않고서는 기록하지 않는다.
리포트를 확인해보니 3월 후반과 4월 초반에는 꽤 열심히 지냈다. 이 페이스대로 오늘까지 행했더라면 4월에 달성하기로 한 일을 끝마쳤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도한 사람만이 진짜로 실패할 수 있다. 하지 않았기에 실패도 할 수 없었다. 침울하고 좌절스러운 미루기의 결과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용기를 낸다. 힘내서 내 기분을 띄운다. 지금을 글로 적어 마주한다. 마음을 다잡는다. 움직인다.
지난달부터 배달 반찬을 시켜 먹고 있다. A4용지에 반찬 업체의 월간 식단표를 출력해서 반찬 배달을 시킨 날에 동그라미를 치다 보니, 학창 시절 달마다 받던 갱지 급식표에 적힌 좋아하는 반찬 이름을 색칠하던 게 떠올라서 잠깐 웃었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석식을 먹지 않고 하교하던 학생이었는데, 석식 반찬이 남을 듯한 날에는 같은 반 학우들이 밥을 먹고 가라고 부러 말해주던 것도 떠올랐다. 고맙고 살가운 호의였다.